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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전환 : 오시미 슈조 '악의 꽃'

기분이 좋아졌다

#.  이제는 왜 그랬었는지도 기억이 안나는 지난날,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가라앉던 시기가 있었다. 내안의 우울이 나를 잠식해 스스로도 헤어나오지 못하던 때 날 기운차리게 해주었던건 this is the end라는 영화. 화장실 유머가 빈번한 B급 영화라고만 알고 있고(사실임ㅋㅋㅋㅋㅋ) 컴 한구석에 저장되어 있던걸 아무생각없이 클릭했던건데 치유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그 이후로 영화라는 매체가 나에게 깊은 의미로 다가왔었다.

#. 한달여간의 조립과 설치, 그 이전부터의 계획들. 이사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정리와 보수할 것들을 하면서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고 체력의 끝까지 소진하며 살다보니 마음까지도 한점 여유가 없었다. 예민해진 상태로 추스를 시간도 사치처럼 여기고 '해야할 일' 하나만 바라보며 하루하루 버텼던 것 같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것 없이. 실제로 이사 전날 몸살로 학교에서는 앓아눕고서는 정작 퇴근해서는 벽에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하고 준비를 했다는.

#. 오늘 소개할 작품은 오시미 슈조의 악의 꽃. 이번 시기의 힐링작품이다. 사실 치유물과는 전혀 정반대의 등장인물들이 하나둘씩 멘탈붕괴를 겪으며 망가져가는 내용이다. 인간 내면의 깊은 뒤틀림을 보여주고 서서히 그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해가는 과정, 서로에 대한 연민과 애증, 그렇게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 읽고나서는 상당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내 안의 뒤틀림이 수용되고 하나둘씩 제자리로 찾아가는 느낌이랄까.

그러고보면 지난 한달간은 삶의 의욕이 많이도 떨어져 지냈던 것 같다. 블로그에 올릴 내용은 많은데 정리할 기운도, 시간도 없고. 밤마다 다음날 출근해야한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싫고. (하루만 아무 일 없이 쉴 수 있길 간절히 바랬지만 정작 쉬기로 한 날엔 해야할 일에 밀려 이도저도 아니게 시간을 보낸) 어떻게든 버틴다는 생각 하나로 보내다보니 의지가 다른 영역들을 무시하게 만들었던 것기도. 

마음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면서 처음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행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바닥을 친 후 올라올때의 전형적인 증상임을 알기에 한시기를 버텨낸 마음이 홀가분하다. 

#. 다음은 보면서 떠올랐던 다른 작품들
 - 신세기 에반게리온 :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다만 이쪽이 훨씬 애둘러 말해서 그렇지.
 - 고백(영화) : 내용은 다르지만 작품의 톤이 비슷했던
 -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외치다(일드) : 드라마 마지막 편에서 주인공이 모든 회상을 마친 후 유골을 뿌리며 운동장을 달리는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