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교사
4년여간의 짧은 경력이지만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왔다고 생각했다. 유형으로만 따진다면 2-3개 장애밖에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내 경력에 이런 학생은 다신 없을거야, 어디에도 이런 학부모는 없을 것 같아 라고 생각을 하곤 했다. 4개의 학급을 담임하면서 느낀건 지도하기에 편한 아이들이란 아주 가끔 마주칠 수 있는 큰 행운이라는 것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특성과 장애학생 부모로 살아야 하는 삶의 무게가 그들을 '평범'이란 범주로 담아낼 수 없는 특징을 갖게 하는 것 같다.
사건이 신고되고 무난히 해결되리라 예상했던 초기에 가정모임에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그 때 좀 놀랐었다. 학교에서 중재하려는 생각이 교사의 입장에서는 맞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모들이 학부모의 입장에서 말씀하시는데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사건을 어느정도 덮고 가려고 하는건지, 쉽고 안전한 방안을 선택함으로 정직하지만 불편한 방안을 회피하는건 아닌지, 무엇이 학생과 학부모와 학교와 교사 전부를 만족시키는 방안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어느정도 선에서 잘 마무리되리라 기대헀던 사안은 하루마다 방향의 키를 잡는 인물이 변동하고 그 때마다 특수교사로서 준비해야하는 작업들과 상황에 맞게 판단하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했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한달 가깝게 시간이 걸릴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하나하나의 단서가 모여 어짜피 오늘까지 이르게 될거 였던게 아닌가 싶다.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직접적인 책임을 지게 될 교사의 입장에서 한쪽을 봉합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면 다른 한쪽에서 무심하게 삐져나온 구멍을 찾는 것 같았다고 해야할까.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이 그 날의 최선으로만 머문다는건 사람을 지치게 하더라.
사실 날 가장 힘들게 했던건 내가 뒷통수를 맞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사안이 뜻대로 해결되지 않았을 때 책임을 기간제담임이 몽땅 뒤집어 쓰게하는게 가능할 수도 있겠다라고 떠올린순간 숨이 턱 막혔다.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이 이 나라에서 얼마나 의미없는지, 교사의 책무성은 얼마나 무거운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다만 내가 책임지고 있는 가정은 어떻해야할지 솔직히 답이 없었다. 매년 2월 계약 갱신이나 이동의 시기에만 느끼던 감정이었는데, 정말 힘들더라. 개별화교육위원회가 열리고 윗분들의 생각을 언뜻 이해할때까지 열흘정도 혼자 마음 앓이를 했던거 같다.
나는 좋은 교사인가.
아직은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다. 그보단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교사의 자질은 의미있는 질문이지만 그 또한 시작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직접 학생들을 만나고 현장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교사가 되어가는거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학부모 앞에 무릎이라도 꿇으려고 생각했던 그 날이 떠오른다. 상처와 같은 경험이 좋은 교사로의 작은 진보가 이루어진다. 긴장이 풀려 기운이 없는 오늘과 같은 이 날들도 교훈이 되고 가르침이 되겠지.
아직 자신있게 이 사안이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 없겠지만 큰 고비가 넘어간건 분명한 것 같다. 다음주에 있을 특수교육지원센터의 점검이 큰 일없이 사건의 종료가 되지 않을까 싶고. 배우고 성숙하자. 더디어도 괜찮으니 그렇게 자라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