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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실패를 경험할 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태도들

근래 경미한 우울증과 함께 둘째 출산 및 임용고시 준비를 하면서 나 자신이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었었다.애써 감추고 쳐다보지도 않던 나의 아킬레스건. 대학 때 난 학과공부보다 선교단체가 우선순위라고 이야기했지만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대학에서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할지, 같은 학생이었지만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가 적응이 되지 않던 나의 모습이 학과에 투영되어 있었고 그간 어딜가던 무난하게 중심부와 어울리며 지내왔던 나에게 학과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로 남겨져 있었다. 쨋든 난 졸업을 했고, 전공을 살려 직업을 가졌으며 이제 결혼을 해 가장으로서 아내와 두 명의 아이를 책임져야 했다. 힘들게나마 선택한 공부는 이전의 나를 대면해야하는 조건이 있었나보다.


내가 매주 본방사수하는 예능프로그램이 몇 있다. 케이블에서는 슈퍼스타K와 지니어스가 있다. 시즌 1, 1화부터 빼놓지 않고 본 것 같다. 밉든 좋든 애정이 있는 프로그램인데 슈스케는 시즌 종료가 되었고 지니어스는 오늘 3명의 플레이어가 준결승을 막 치루었다. 근래 명승부들이 계속되고 있었던거에 비하면 오늘은 좀 운빨?!로 정해진게 없지 않아 있어서 좀 싱거운 승부가 되었지만 탈락자의 인터뷰가 참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 좋은 회차가 된 것 같다. 


근래 실패에 대한 생각들을 참 많이 하게되었다. 나의 올 해 임용고사 뿐 아니라 내년에 재계약, 혹은 14년 들어 부각되는 건강의 문제들, 또는 가까운 사람들이 나름의 뜻을 갖고 시작하였으나 마치지 못한 채 돌아서는 모습들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실패를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이 생각에 나 개인적으로 큰 계기가 된 건 이 사람의 눈물이었다.



지니어스 3 : 블랙 가넷 출연자 하연주


초중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참가하다 최근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하연주씨가 지난주 데스매치에서 탈랐을 했다. 상대방이 결정적인 실수를 했고 그 기회를 잘 잡았는데 상대방의 허수에 속아 탈락자가 되었는데 게임을 마친 후 인터뷰에서 눈물을 보였었다. 게임에서 진 게 아쉬운 마음과 더불어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지니어스 시즌 촬영동안 데스매치 상대방에게 부담을 많이 느꼈었고 그게 탈락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자기가 얼마나 자신을 믿지 못했는지 깨달은 것 같다. 내가 나를 믿어주지 않아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그녀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사실 임용고시라는건 중고등학교의 중간기말고사나 수능처럼 일정한 범위와 과목안에서 출제되는 것도 아니고 시험만 잘 보면 되는 것도 아니라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우물속에 숭늉찾는 느낌이랄까. 1년동안 혹은 그 이상동안 죽어라 이 시험 하나 매달린 경쟁자들보다 잘해야한다는 압박과 더불어 성실하지 못하게 보내온 시간들에 대한 자책들이 엮이면서 마음이 썩 편하지가 않았다. 피할 수 없는 선택인데 미련하게 뭐하나 싶다가도 한번만 제대로 해보고 그만두든 어쩌든 하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흘러갔다. 믿고 기다려주는 아내와 사랑스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들이란.


아내가 둘째 출산을 하고 처가에 산후조리를 하는동안 몇주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생겼었다. 전보단 나앗지만 여전히 한참 남은건 분명한 레이스에서 하연주씨의 말은 나 자신에게 해주는 말처럼 와닿았다. 그동안 참 자책도 많이 했는데 그러지 말걸. 조금만 믿어줄걸. 그 날 이후로 나의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도 태도는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좋은 성적 이전에 나 스스로 성실히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로 하고 조금 더 멀리 보고 눈 앞에 살아야 하는 것들을 살아내는걸로. 이게 내가 바라는 목표 달성에 이를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스스로에게 격려하고 성취했던 순간들은 나 자신에게 남아있을 테니까.



저,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화가 쉽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 삶의 열매를 맺는다는건 열매라는 매타포를 사용한 것만 봐도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때에 따라 빛과 바람이 불어오고 비가 내리고 적절한 온도가 주어져야 거둘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오랜 여정인건데 그걸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실패를 대해야 하는가. 최근에 봤던 영화 중에 그 대답을 흐릿하게나마 찾게 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안정된 정신과 의사에 매력적인 여친이 있지만 행복을 찾아 떠나는 꾸뻬씨의 이야기


이 영화는 행복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인생을 다룬 내용이기도 하다. 집을 떠나 여행을 떠난다는건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상징을 가지고 있는데 정신과 의사인 헥터(꾸뻬겠지만 그렇게 아무도 부르지 않는다!!)는 행복의 의미를 찾기 위해 먼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행복이 무엇인지 의미있는 만남을 가진 사람들에게 묻지만 결국 자신이 행복의 의미를 깨닫고 돌아오게 된다. 영화의 스포가 될 것 같아 자세히 적진 못하겠지만 행복의 의미를 깨다는 그 순간에 꾸뻬는 온전히 인생을 포용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삶과 맞닿아있는 죽음, 기쁨을 온전하게 하는 슬픔, 무언가를 얻는 것만큼 중요한 상실까지. 그게 인생이고, 우리는 그 인생을 수용함으로써 성장을 이루어낸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침묵하는 문화에서 자라고 있다. 마치 영원히 살 듯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다. 삶의 목적이나 의미같은건 물질적인 가치 앞에서 무가치해져 버리고 우리의 행복은 소유함에서 시작된다고 철저히 강요받는다. 적어도 나는 아니라기엔 그런 가치관에 깊게 물들어 있는 것 같다. 마치 살이 빠지면 계속 건강할 것만 같고, 좋은 물건을 사면 멋진 사람이 된 것 같고, 임용에 합격하면 평생 걱정거리는 없을 것만 같다. (진짜 그렇다.) 나에게 실패란 있어서는 안되는 일로 여겨진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다신 못 일어날 것 같은 강박감.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이 다행이고 위기가 오지 않은 것이 운이 좋아서라고 믿는 얇팍함. 그런 나에게 실패를 인생의 한 부분으로, 죽음을 생의 벗으로 삼는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잠언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온다. 지혜자는 칭찬을 듣기보다 나에게 하는 쓴소리를 귀기울여 듣는 사람이라고 한다. 오늘 나에게 주어지는 쓴소리를 나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 그 가운데 귀기울이고 들어야 하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지금도 나는 수많은 실패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란 놈이 가진 능력의 한계와 부족함들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받아들이기는 싫은 마음을 넘어 나 자신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이지 않을까.


실패의 시기를 보내는 가까운 이들을 보면서 괜찮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게 우리네 인생이고 결국 죽음마져도 우리를 이기지는 못할거라고. 부질없는 인생의 여정이 의미를 찾아가는 발걸음을 내디고 싶다고. 성공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고 말이다. 오늘따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다르게 들려오는구나. 어쩌면 다음주 지니어스 결승전에서 패배하는 사람은 우승상금보다 더 큰 걸 얻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