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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소아응급실에서의 24시간, 그리고 다이노소어

10시가 되어 희언이가 외래진료를 마치고 응급실에 온지 만하루가 되었다. 여전히 병원엔 병실이 없나보다. 초기에 몇몇 검사를 받느라 부산한 시기가 지나니 가끔 체온을 재거나 항생제를 놓을 때 외엔 우릴 찾지도 않는다. 타인에게 무심한 나도 한공간에서 오랜 시간 지내다보니 이래저래 관찰을 하게된다.

이곳 응급실의 분위기는 난민촌 같다는 아내의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아이들과 사투를 벌이다 오거나 급작스레 오셔서들인지 전체적으로 부산한 분위기이다. 더군다나 우리와 같은 장기 입원대기자들이 좀 있어서 여기가 합숙공간인지, 응급환자들이 모이는 곳인지 모르겠다.

처음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들의 성향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다들 천지차이다. 인격적으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분도 계시고 계약을 들먹이는 분도 있다. (거의 실패임). 부부가 너무 지쳐서 아이에게 냉담하거나 윽박지르는 분도 계신다. 나와 아내는 이들 중 어디에 가까울까.

알게모르게 서로가 눈에 익으며 동지애가 형성되기도 하다. 희언이가 워낙 아기여서 주로 몇개월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재미있는건 우리가 나이가 많지 않다고 첫째아이라 지래짐작하시고 여러 조언들을 해주시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슬며시 4살짜리 딸이 있다고 하면 다 놀라시더라^^;;; 그러다 먼저 퇴원하는 아이를 보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심도 생기고 그러더라. 어제 저녁만해도 같이 시작한 친구들이 좀 있었는데 이제 한명만 끝까지 같이 있다. 근데 보호자분이 좀 무서운 할머니이심;

응급실에 있으면서 염려되는건 70일 아기가 오히려 아픈 아이들 사이에서 다른 감염이 되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인다. 여기가 집보다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그리고 쉬는게 어렵다. 다른 것보다 잠자는게 어려운데 새벽에 버티다버티다 쇼파에 몸을 구겨서 눕고 캥거루케어 자세로 배에 희언이를 올리고 팔로 떨어지지 않게 받치면서 한시간정도 잘 수 있었다. 난 그나마 그렇게 잤는데 아내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지 깊게 짐들지 못하더라. 전날도 잘못자고 속도 안좋았는데 잘 버텨주어야 하는데 걱정이 된다.

저녁을 지나 한가한가 싶었는데 새벽을 맞아 새로운 아이들이 많이 들어온다. 희언이처럼 옷 벗겨놓은 아가들도 있고 눈이 풀린 초등학생들도 있다. 비염때문에 온 아이들도 있는거 같다. 신기한건 그러다가도 어느정도 새벽이 되니 인원이 맞춰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좁은 공간에 따박따박 놓여진 쇼파에 한명두명 눕기 시작한다. 코고는 소리도 들려오고 애들도 우는 소리가 적어지는 것 같다. 나도 시대의 흐름을 따르고자 그쯤 눈 붙인것 같다.

모두의 시선 정면에는 티비가 놓여져있다. 소아응급실답게 채널은 어린이채널로 고정. 여러 프로그램이 반복편성되어 나오는데 나의 시선을 끈 프로그램이 있다. 그것은 파워레인져 다이노소어. 작년 완구대란이 일어났을 때 구하기 힘들었다는 그 작품이었다. 먼 옛날 바이오맨, 후레시맨 등등 특촬물을 본 이후로 진~짜 오랫만에 본 것 같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시청을 방해하는 요인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음소거모드라는 것. (라바가 가장 볼만하더라) 이러나저러나 시간을 보내야하는 입장에서 유심히 다이노소어를 봤는데 몇가지 포인트들이 보이더라.


전체적인 연출이 엄청나게 발달한 것 같다. 아무래도 특촬물이라는 분야가 일본에서 꾸준히 생산되어졌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장르 특유의 과장된 표현이나 연출이 있다지만 거슬리기 보다는 장르 특성에 어울려보인다. 나름의 스토리라인도 전보다 더 다양화된 것 같았다. 매년 새로운 시리즈가 나온다고 하던데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자기복제는 꼭 피해야만 하는 요소였을 것이다. 핸드폰이 꺼져있었을 때라 인터넷으로 정보를 엄청 찾고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다이노소어의 특징 중 하나가 삼바라고 한다. 어쩐히 주연들이 변신할 때쯤에 스텝이 엄청 현란하고 춤동작들에서 차용된 포즈들이 많이 나오더라. 특촬물과 삼바라니, 참신하지 않은가.


한가지 아쉬운 점은 로봇 모양이 매력적이지만은 않더라. 요즘 유행하는 로봇물들이 대체로 그런 느낌인데 현실성을 살리려다 그런건지 어째 모양새가 예전것만 하지 못한 느낌이다. 다이노소어가 워낙 완구대란이 일어날만큼 잘 팔린 시리즈여서 이 부분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의구심이 들 정도였으니까. 오히려 케릭터나 시리즈에 대한 호감이 완구 구입으로 이어진게 아닌가 싶다. 아참, 그래도 전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좋더라.


[후기 겸 마무리]


결국 우리는 다음날 2시 경에 입원실로 배치가 되었다. 병원에 도착한지 26시간만에, 응급실에서 대기한지 만 하루만에야 편히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수십명이 북작거리는 곳에 있다가 조용한 곳으로 오니 첨엔 낯설기도 하더라. 그래도 쉴 수 있다는게 참 좋다. 여기에 와서야 눈도 좀 붙이게 되었으니. 2인실로 배치가 되었는데 처음 마음은 이것도 감지덕지라는 생각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하루하루의 입원비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아마 응급실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게 하는 이유는 비용과 관계없이 입원을 감사히 여기게 하려는 계략이 아닌가 싶었다ㅋ


검사결과도 다 나오고 퇴원일도 확정한 지금에서 응급실에서의 24시간은 아득한 얘기같다. (바로 어제인데도!) 복도를 거닐다보면 응급실에서 만났던 아기들이나 보호자분들이 보이는데 어째 느낌이 좀 다르다. 그 아이들도 좋은 결과 받고 잘 회복되어서 건강히 나갈 수 있기를. 아내는 이제야 긴장이 좀 풀리는지 그동안 모자랐던 잠을 보충하고 있다. 예상했던 날보다 하루 더 병원에 있게 되었지만 그 하루가 쉼이 되어줄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병원을 많이 가 본 사람은 아니어서 입원이라는게 참 낯설고 긴장도 되었다. 결혼하고 나서 우리 가족이 이정도로 아픈건 처음이지 않나 싶다. 나이가 어리다보니 고열뿐임에도 많은 정성과 진료가 있었다. 정작 우리 부부는 담담히 시간들을 보냈지만 주변에서 공동체와 이웃들이 염려해주고 격려와 기도를 해주셔서 감사할 수 있는 것 같다. 학교에서도 가족을 먼저 챙기라며 넉넉히 조퇴와 연차를 쓰게해주신 관리자분들과 동교교사분들이 계셔서 더 넉넉히 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모두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