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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자기확신과 기만 사이에서

정신없는 오전을 보냈다. 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도 경험했던 일이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
학생이 손목에 스스로 해코지를 했다 한다. 다행히 깊진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과 교사를 곤두세울정도는 되었다.
사안을 조사하고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를 고민하며 어제 오후 시간을 보냈다면 오늘 오전동안은 계속된 상담과 약속들로 가득 채웠다. 아마 행정적 처리만 마무리 지으면 ‘이번’ 사안은 마무리 될 듯 싶다.

충동조절이나 우울과 같은 정서적인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을 대할 때마다 외줄타기를 하는듯 긴장이 된다.
언제 어떻게 자극에 반응할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한편 그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 확신을 가지고 대하기 때문이다. 본인들도 모르는 행동의 원인을 찾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고 앞으로 어떻게 안고 살아갈지 같은 것들 말이다.
사실 나는 사람을 파악하고 들여다보는걸 크게 어려워하진 않는다. MBTI에서 NT로 직관을 잘 사용하는 편인데다 애니어그램 9번의 상대방의 감정에 깊게 몰입하거나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편이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기분이나 생각 혹은 더 깊은 속내까지 느껴질 때가 많다. 
때때로 나의 감에 대한 믿음이 과해지면 상대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니가 널 모르고 있는거야’라는 태도로 대할 때도 있다. 그 정도로 대화가 진행되었다면 맞고 틀리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는데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방의 마음을 헤집어 놓은 적도 많았다. 참 부끄러운 기억이다.
나의 이런 면은 직업적인 측면에서도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기능을 하곤 한다. 자신을 표현하는데 서툰 지적장애 학생들이나 감정의 프로세스가 일반적이지 않은 자폐학생들과 지내다보면 가끔은 내가 작두타듯 학생들과 밀당을 하곤 한다. 대체적으로 내가 학생들에게 도움을 제공해야 하는건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물러서야 하는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된다. (대체적으로 난 학생들에게 스스로 할법한 수준의 과제를 제공하고 혼자서 하도록 지도하는 편이다.)

끊임없는 질문 속으로 날 밀어넣는다. 나의 선택은 틀리지는 않았는지. 과연 그것이 학생에게 최선인지. 내가 과하지는 않았는지, 혹시 내가 놓치거나 실수한건 없는지 말이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나 스스로 나를 속인채 학생들을 대하기가 쉽다. 나에게 주어진 권력과 책임들 속에 작은 폭군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정서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을 대할 때 어려운건 일반의 범주로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나와 진심으로 약속을 하고 다짐을 하지만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어긋나는 학생을 난 비난할 수 있을까. 내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건 약속을 할 때의 순간의 진심과 어긋날 때의 순간의 충동 중 어디일까.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의지의 신화 속 어디까지 학생을 밀어붙여야 할까.
사람을 대하는 직업군에 있다는게 버겁고 어렵게 느껴진다. 열번에 아홉번을 잘해도 한번의 잘못이 미치는 영향이  가늠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실제 사안보다 더 마음이 무거운건 이후에도 이 학생이 안고 가야하는 짐이 작지 않다는걸 알기 때문인 것 같다. 2학기의 절반이 지나가는 10월 말, 일상의 리듬이 깨어지며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