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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결혼 이야기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영화중에 아담 드라이버와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으로 부부에 대한 영화가 나온다는 예고편을 본 적이 있다. 자연스레 머리속엔 ‘카일로 렌과 블랙위도우가 부부라고! 둘 다 연기 잘 하는데’ 라는 생각이 (대형 프랜차이즈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감독은 이름은 들어본 듯 한데, 누구지. 정도였다.

최근 나이브스 아웃을 보고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상황에서 아내와 금요일밤 영화를 고를 때 최신 업데이트에 이 영화가 있는 것을 보고도 섣불리 손이 가지 않았다. 좀 더 가볍고 감정소모없는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부담이 될까 싶었다. 하지만 영화 속 표현대로 ‘2초만에 나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 마치 소설과 같은
영화를 보면 만든이들이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작품에 묻어나곤 한다. 결혼 이야기를 보면서 일관적으로 감탄하고 좋았던 건 감독이 상당히 세심하고 따듯한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는구나 싶었다. 대사에 담지 않더라도 누구나 결혼생활중에 경험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에피소드로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웃음에 대한 기대가 있진 않았는데(파경 이야기니까!) 자잘하게 많이 웃을 수 있었다. 아내와 대화를 나누며 웃다가도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속에 지켜봐야만 하는 장면들까지 두 인물에 푹 빠져 볼 수 있었다.

영화의 첫 장면이 각자가 상대방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이 부부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음에도 이들이 얼마나 깊게 사랑하는지 전해져왔다. 아이러니하게 그 자리는 이혼조정을 위한 상담절차였고 어떻게 그 애정이 깨어질 수 있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를 시작한지 5분만에 말이지) 영화를 보며 잘만든 일본영화나 한국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인물을 다루는 방식에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 유명 배우가 일상 연기를 하다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적기도 하지만 두면의 주연이 영화의 (아마도) 모든 컷에 나올정도로 이 영화는 두 배우의 연기에 많이 기대고 있다. 그러나 이내 이들의 고단한 얼굴, 행복한 미소에 스타워즈와 마블의 그늘에서 벗어나 극 중 인물로 보이게 되었다. 아내와 대화했던 중 스칼렛 요한슨 키가 저렇게 작았었나, 몸을 많이 불렸네 라는 대화를 했었는데 아담 드라이버 키가 워낙 커서 비교되는 것일수도 있으나 아마 마블 영화에서는 촬영 각도를 비롯한 여러 기법으로 배우의 키나 비율을 다르게 보이도록 했을 가능성이 컸을 것 같다. 두 배우가 워낙 연기를 잘하는걸 알고 있었지만 좋은 연출과 각본에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아담 드라이버는 주연상으로 노미네이트될 것 같다고 하던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생각이 났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유명배우가 연기하는데 이질감이 들면서도 연기력에 취해 집중하게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더군다나 이들은 스타워즈의 카일로 렌과 마블의 블랙위도우잖아. 초대형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의 인물들이 주방정리를 놓고 아이를 돌보는 일을 놓고 ‘입으로만’ 다툰다. 얼마전 본 나이브스 아웃에서도 느낀거지만 이들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작품에서 얼마나 벗어나고 싶었을까 싶어 애처로운 마음도 들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두 작품 다 배우들에게 다음 스텝을 폭넓게 밟을 수 있도록 좋은 발판이 되어줄 것 같다.

* 넥플릭스 오리지널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무한한 제작비와 스튜디오의 간섭이 없는것으로 믿고보는 컨텐츠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했지만 한동안 그것이 그것같아보이는 양판소적인 면모를 보이면서 구작들이나 돌려보게 되었었다. 최근 어떤 변화가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 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굉장히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듯 하다. 내 영화를 폰으로는 보지 말아달라던 스콜세지 감독께서 아이리시맨이라는 띵작을 만든것도 3시간 반이라는 러닝타임만으로도 넷플릭스라는 기반이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물론 봉준호의 옥자나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와 같이 대단한 감독들을 모셔와서 작품을 만들게 한 것이 결혼 이야기처럼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여러 요인중 핵심일거다. 최근 HBO와 아마존에 이어 디즈니에서도 자체 스트리밍 플랫폼을 출시하고 운영하는 중에 넥플릭스의 생존법이 여기에 있지 않은가 싶다. (그럼에도 더 보이즈는 정말 좋았음ㅃ!!! 반지의 제왕 드라마도 기대되고 말이지 ㅋㅋㅋ) 굳이 티비가 아니어도 핸드폰으로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의 변화가 영화계에도 자연스레 자리잡지 않을까 싶다. 좋은 영화를 잘 볼 수 있어서 감사했음. 조만간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를 몰아보려고 한다.

한줄평 : 좋은 감독이 좋은 배우들을 만난 참 괜찮은 작품 (별 다섯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