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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기록

삼남매와 함께 북한산 글램핑장을 가다

# 개요 

일시 : 2020.01.12(일)-13(월)

장소 : 북한산 글램핑장(서울 은평구 북한산로 232-1, 010-7183-0734)

비용 : 예약 149,000원(평일 기준, 어린이 2명 추가, 실내용 난방기, 개별 바람막이), 바비큐 2만, 캠프파이어 2만

 

#. 캠핑장으로 출발 (1)

 

 


우리 가족은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니다. 차가 없기도 하지만 매 방학마다 충북 단양에 있는 처가로 내려가 며칠씩 묵고 오면 그닥 여행에 대한 마음도 가라앉곤 했다. 그러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아마) 처음으로 처가에 내려가지 않기로 하며 어디라도 좀 다녀올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일을 하지 않다보니 내 시간은 많은데 비해 아이들이 수영과 발레 등 정기적인 수업들이 있고 아내도 공동육아 식사를 해 생각보다 일정 잡기가 쉽지 않았다. 휴직도 막바지여서 재정적인 여유도 있지 않아 거창한 플랜을 세울 수도 없었다.

아내와 당일치기 여행을 생각하던 도중 캠핑을 한번 해볼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어렸을때나 가족끼리 캠핑을 가보았지 아무 경험이 없는 초심자이기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글램핑이라는 게 우리 상황에 맞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어리기도 하고 많기도 하고, 아무 정보나 경험 없이+용품도 하나 없는 상태에서 세팅되어 있는 곳으로 가면 괜찮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서울 근교까지는 글램핑장이 나오는데 막상 가려고 해도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한다고 해도 한시간반에서 두세시간은 생각해야 하는 곳들이 대부분이어서 고민하는 찰나 북한산 글램핑장이 눈에 들어왔다.

진관동이면 구파발 옆동네나 마찬가지인데 일단 위치에서 합격. 비용은 왠만한 글램핑장이랑 크게 차이가 나진 않는데 거리에 따른 이동비용을 생각하면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막상 네이버로 예약하는 도중에 큰 난관에 부딪혔는데 모든 텐트가 2-4인용이었던 것. 당시 시간이 새벽 한두시경이었는데 문자 보내 놓으면 다음날 연락 주겠지 보낸 문자에 금방 답이 와서 그것도 해결되었다.

자, 이제 출발 당일. 어쩌다보니 아내의 생일이자 교사 수련회 대타로 초등부 설교까지 해야 하는 날이었다. 여차저차 일정들을 마치고 짐이 많던-주로 고기를 비롯한 먹을 것들과 담요였다- 우리는 타다를 불러 30분 만에 글램핑장에 도착을 하였다.

 

 

 

 

출발부터 씐남

 

 

#. 글램핑 시설(2)

 

 


오. 생각보다 넓고 좋았다. 다섯이서 여유 있게 쉴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침대에는 두 명 정도 누울 공간이 있고 추가 침구류는 직원분이 가져다주셨다. 식기들은 1회 용품과 일반 식기가 있었는데 저녁에 1회 용품의 유혹이 있었으나 일반 식기 사용 후 공용 개수대에서 (온수로!) 설거지를 했다. 냉장고에는 가져온 먹을거리들을 담고 짐을 풀었다.

겨울이라 추위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데 바닥은 전기로 온도조절이 되고 난방기가 있어서 금새 공기가 데워졌다. 새벽에 잠이 깨었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추워서 놀랐다. 코끝 찬 공기를 맡으며 다 좋은데 여기서 에러구나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난방기 옆에서 잤던 아내가 기름 냄새 때문에 껐던 것. 아내는 바닥에 있었는데 온돌이 따스워서 공기가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단다. 쨋든 자리를 옮긴 후 난방기를 가동하자 이삼분만에 텐트 안 공기가 금세 데워졌다. (그리고 아내는 곧 잠에 곯아떨어졌다ㅋ)

난방기 위에는 에어컨(!)이 있던데 여름에 오면 매우 쾌적할 것이라 예상된다. 물론 벌레들이 그득하겠지만. 아참, 여름에는 물놀이장도 운영한다고 한다.

 

식기들과 냄비가 준비되어 있다. 부르스타는 있으니 부탄가스를 구입해야한다.
사진으로는 잘 안나온듯 하지만; 조경도 잘 꾸며져 있었다

 

 

#. 산책1 (3)

 

 


숙소에 짐을 푼 우리는 곧 산책에 나섰다. 여섯 시에 바비큐를 예약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입실이 3시여서 겨울철 해지는 걸 생각하면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기엔 주변 자연을 맛보기가 아쉬울 듯했다.

이번 겨울이 따듯해서일까. 간간히 흙길이 얼음이 녹았는지 진흙탕이 되어 있어 조심스레 걸어야 했지만 캠핑장 바로 옆이 둘레길이어서 꽤 걸을만하게 잘 정비되어 있는 편이었다. 개천 옆으로 나있는 길은 아이들 뿐 아니라 아내와 나도 좋아했었다.

 

 



서울 도심에서 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산책하는 내내 강원도 어느 산골을 걷는 느낌이었다. -사실 여기도 서울인데다 바로 옆동까지 대단지아파트가 개발되어있기도 하다ㅋ-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자연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다. 도시생활을 좋아하지만 가끔 자연에서 충전이 필요함을 느끼는데 1박의 시간 동안 충분히 누리며 돌아갈 수 있었다.

여기가 진관 야생동물 보호구역이라는 표지판을 읽어주자 아이들이 너무 기뻐했다. (특히 둘째가 매우 흥분하여 곳곳에 숨은 양서류를 찾고자 했다) 흐르는 물은 어찌나 맑던지. 겨울에 이파리가 무성하진 않았지만 나름의 멋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길을 걷다 보니 진관사로 발걸음이 닿았다. 또다른 목적지인 한옥마을이 아니라면 좀 더 높이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천천히 구경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진 못하고 잠시 들려서 둘러보았다. 다음엔 꼭 팥죽이랑 전통차를 마셔야지. 솔솔 피어나는 향을 맡으며 돌아서기가 여간 아쉬웠다.

 

 

#. 산책2 (4)

진관사 아래에는 한옥마을이 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전체를 다 살펴보진 못했는데 전주 한옥마을에 온 느낌이 났었다. 정돈된 한옥들과 카페를 비롯한 여러 가게들. 느긋하게 볼 여유가 없어 아쉬웠다.

 

 



지도어플로 보다 한옥마을에 문학관이 있다고 나와 들려보자고 했다. 셋이서문학관이라길래 형제들이거나 친구들이겠거니 짐작했는데 천상병, 중광, 이외수라는 네임드 작가님들이 계셔서 놀랐다. 이분들이 활동시기나 연배가 딱 맞지 않음에도 같이 계신 사진이나 자료들을 보며 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문학관을 들여다보기 앞서 매화전을 보았는데 너무 좋았다. 할아버지의 제자이기도 한 손자가 이어서 같은 주제의 다른 화풍으로 그린 작품들도 인상적이었고 곳곳에 장인만이 나올 수 있는 글귀들도 마음에 남았다.

 

 



매화전에서 문화적 허기를 많이 채운지라 문학관에 대한 기대가 많지 않았는데 깊은 감동을 받고 돌아왔다. 처음에는 중광스님의 글이 직설적이고 위트가 있어 눈에 들어왔는데 내 마음을 깊이 흔든 건 천상병 시인의 글이었다.

 

 



고등학생 때 문학담임을 만나 지각을 하면 하루 한편 시를 암송해야 집에 갈 수 있었다. 그때 처음 외웠던 시가 귀천이었다. 그 정도의 인연이었는데 문학관에 작가 소개를 보고 놀란 게 있었다. 당시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 넘게 고문을 당했다는 것, 그럼에도 순수한 작품들을 남겼다는 것이었다.

귀천에 이어 나의 가난은, 그리고 일기를 보며 어떻게 이렇게 티끌하나없는 맑은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감탄을 했다. 더불어 산책길에서 아내와 가진 것의 상대적 비교는 하지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비슷한 결의 정서가 담긴 것 같았다. 그리고 날개에 이르러 마음의 진폭은 끝까지 울렸다. 하나님에게 날개를 달라고 하는 시인의 마음과 막힌듯한 상황이 깊이 공감이 되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문화적인 체험들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것이 세계적인 작품이든 동네 어린아이의 손길이든 말이다. 그런면에서 이번 여행의 깜짝 선물은 셋이서문학관에서의 시간이었다.

#. 바비큐와 캠프파이어(5)

 

 



간신히 시간에 맞춰 도착한 우리는 세팅된 화로에 고기를 얹었다. 육식 위주의 저탄고지 식단을 하기에 코슷코에서 평소에 사는 고기들에 모둠 소시지, 버섯 정도만 추가해서 준비를 해갔다. 생각보단 불이 거세지 않아서 타들어가는 장작에 삼겹살의 기름이 거센 불꽃을 일으키면 다른 재료들을 재빨리 익히곤 했다.

밖에서 먹는 음식이야 말할 것도 없고 바비큐 고기라니 더욱 맛있었다. 아이들도 오래간만에 무제한으로 실컷 먹었던 것 같다. 다만 한번 비닐로 막혀 있더라도 텐트 앞 공간이다보니 추워서 한시간정도 지나니 (식사 막바지였지만) 불 앞에 있던 나만 남아 배달해주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텐트 앞마당에 토치로 연탄에 불을 붙인 후 준비된 장작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불이 번져서 꽤 그럴듯한 캠프파이어가 되었다. 다섯 식구가 불 옆에 의자에 앉으니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 내가 어릴 적에 가족이랑 같이 캠핑했던 기억도 나고, 결혼 후에 아이들이랑 산에서 캠프파이어를 하게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뭔가 신기하다고 해야 하나, 감사하다고 할까. 따듯한 불만큼이나 마음도 훈훈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마시멜로우 굽기였다. 나무젓가락에 마시멜로우를 꽂아 불길에 휘휘 저으면 바깥이 살짝 타는 게 보인다. 그쯤 한입 먹으면 말랑말랑한 게 그냥 먹는 거와는 차이가 크다. 아내는 이렇게 한마디로 정의했다. “초코파이 안쪽 맛이네”

이 마시멜로우와 참 크래커, 초콜릿 조합으로 같이 먹으니 그 또한 맛이 있었다. (그렇게 먹는 명칭이 있던데 기억이 안 난다ㅎㅎ) 아마 고기보다 마시멜로우때문에 체중이 더 늘어났을 것 같다. 나중에는 귤도 구워서 먹었는데 당도가 높아지는 장점과 뜨끈한 귤의 식감이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타들어가는 불을 바라보며 멍-을 때린 게 아내는 참 좋았다고 한다. 나도 따닥따닥 나무가 타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별생각 없이 불의 온기를 쬐던 시간이 좋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 밤-그리고 아침 (6)

 

 


부산한 아이들을 재우고 나도 금방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전날 아내 생일맞이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었다;) 생각보다 일찍 잠에서 깼는데-1시 즈음이었던 듯- 아내가 깨어있었고 무엇보다 공기가 엄청 추웠다.

처음 든 생각은 여기서 캠핑 망쳤구나,였다. 지금까지 다 좋았는데 밤을 이렇게 보내면 말짱 꽝이구나 싶은. 약간 혹한기훈련 생각도 나고. 꺼진 난방기를 보면서 낮에 괜히 틀어놓고 나가서 망쳤구나. 새벽이지만 돈을 좀 주더라도 기름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머리가 아파서 잠시 껐다고 한다.

바닥에는 아내와 첫째, 막내가 누워있었고 매트리스 위에는 둘째와 내가 잤는데 아내가 난방기 바로 옆에서 누워있다 보니 살짝 잠이 들었어도 기름냄새가 신경쓰였나보다. 더군다나 전기온돌이 따듯해서 어느정도 공기의 영향을 덜 받고 있었던 것. 매트리스는 바깥쪽이라 찬공기가 조금씩 넘어오고 있었을 뿐이고. 그나마 이불이 따듯해서 있을만했는데 둘째녀석이 춥다고 가져가는 바람에 난 잠에서 깬거였다.

 

 


아내는 매트리스로 옮기고 난방기를 켜니 2-3분만에 공기가 덥혀져 놀랐다. (그리고 아내는 잠들어 아침까지 깨지 않았다) 따순 텐트안에서 막상 잠도 오지 않아 영화나 한편 봐야지하면서 찾은게 ‘집의 시간들’이라는 다큐였다.

 

 


영화는 꽤 좋았다. 철거를 앞둔 오래된 아파트에 살았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은 작품이었는데 공간에 담긴 이야기를 듣는 것도, 새소리를 비롯한 고즈넉한 분위기의 아파트 단지도 새벽녘과 잘 어울렸다.

점차 조금씩 텐트의 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뜨는 해를 볼까 했지만 특별할 것 없다는 생각에 그냥 아침을 맞았다. 아침으로는 라면을 끓였는데 모두 준비하는 시간을 맞추지 못해 조금 불어난 것 외엔 아주 괜찮은 식사였다.

 

라면은 매점에서 구입할수도 있다
우리 숙소를 찾아온 고양이, 먹을걸 던져줬는데 안먹었다;;

 


퇴실시간은 11시였는데 아침을 먹고나니 오전에 활동하기엔 시간이 짧고 어딜 가자니 짐이 많아서 어린이들 공동육아 시간에 맞춰 퇴실하기로 했다. 갈 때처럼 타다가 잡히면 좋으련만 잘 안돼서 버스정류장까지 가면서 앱으로 찾다가 지나가는 택시를 붙잡고 편히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러고 공동육아로 바로 감; 미안;
택시가 있어 편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아직도 우리 가족이 캠핑을 갔다는데 꿈결처럼 잘 믿기지가 않는다. 아이들이 좋았었다고 지금까지 이야기하고 있어 실감할 따름이다. 1박이란 시간이 길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알차게 채우고 돌아갈 수 있어 만족감이 크다. 서울에서 자차없이도 삼남매와 함께 캠핑을 즐길 수 있다니!

한가지 더 좋았던 점은 직원분들이 매우 친절했었다. 이동하는 것, 불 피우는 것 하나하나 꼼꼼하게 해주시고 여러번 확인해주는 등 열심히 일해주시는 것도 감사했는데 아이가 많은걸 이해해주고 도움 주신 것들도 참 감사했다. 


다음 캠핑은 언제 가게 되려나. 우리 가족에게 의미있는 연례행사가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