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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불면의 밤

지난날에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도, 아내도..그리고 하돌이도.


한학기에 몇번 없는 부서회식을 짧게 마치고 집에 들어온 시간은 오후 8시. 하돌이는 갓 잠에서 깨어나려고 뒤척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잠든 시간은 새벽 1시 무렵. 긴긴 시간동안 젖도 먹이고 귀저기도 갈아주고 혹시나 열이 있을까 체온도 재어보고(정상이었음) 아는 한도내에서 다 해보았는데 고놈이 어찌나 눈이 땐땐하던지.


시간이 흐를수록 지쳐가더라. 부모의 무기력함이 죄책감으로 변하는 것도 순식간이고. 아내는 저녁을 차려놓은 상을 놔두고 아이를 달래느라 열시가 넘어서야 내가 하돌이를 안는 조건으로 입맛도 없는 밥을 삼켜야 했고 나도 내일의 출근 같은건 생각할엄두도 없이 아이의 미세한 반응을 놓치지 않으랴 지켜보고 어루고 있었다. 그러다 화가 나더라. 오랜만에 내면 깊은곳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걸 느꼈다. 그 당시에는 그 분노가 아이를 향한 것인지, 나 스스로에게 향한 것인지, 아니면 아내를 향한건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절망에 가까운 감정이라는걸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도 안되는 통제불능의 상태. 아내는 아이에게 웃는 얼굴로 대하려 했으나 끝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고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토닥이는 일이 전부였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고, 아기는 다시 잠이 들었다.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무너뜨리는가. 아이가 아팟던것도 아니고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날선 말로 상처를 준 것도 아니다. 지지난 주일 아침에 아이를 순산하고 기쁨에 가득찼던 기억은 이미 머나먼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 아닌가. 무엇이 우리의 기쁨과 감사를 앗아가는가. 


지금까지 잘 버텨왔던 방전되어버린 체력이 누진세처럼 과다청구되어버린 상태에서 불꺼진 방, 침대 한켠에 같이 누워 한참 아내의 눈물을 받아주었다. 때때로 공감하면서, 때때로 무엇이 진실인지 상기시키며 눈물이 그칠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나눈 이야기는 모유수유에 관한 것이었다. 너무나 어려운 것에 대한 좌절,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에게 주지 못한다는 미안함, 마치 부모의 자격을 상실한 것 같은 자괴감 등이 휘모리 치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가 조금만 고통을 참으면 된다.",  "귀찮아도 초반에 잘해야 한다."는 모유수유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었다. 우리도 노력의 결실을 간간히 맛보기도 하였지만 어려움이 더 많았다. 예상된 어려움이었을지라도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리고 실제보다 더 크게 느껴지면서 마치 모유수유에 실패한 너는 엄마의 자격을 갖추지 않았다! 라는 무언의 심판을 받는 것처럼 마음의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내가 겁도 많고 게으를 때가 있지만 본인이 하고자 하는 영역에 있어서 자신의 한계 이상의 노력을 하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잘 하지 못했을 때 그 노력에 대해 알아주고 수고했다고 말하는 것에 인색하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그런면에서 여성분들에게 육아라는 것이 마치 예비군의 군대 이야기처럼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공익요원으로 근무하는 것도 의무를 다하는 것임에도 현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은연중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되는 것 말이다.) 아내는 교회에 가지 못하게 될 것 같아 두렵다는 이야기도 했다. 모유수유를 하는 것이 외부활동을 하는데 있어 더욱 편리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조건인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본인이 아직 몸이 회복되어야 하는 상태임에도 전혀 쉼을 가질 수 없는 상황도 부담이 많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내가 직장에 다녀와서 잘 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염려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해진 것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아.. 이 모든 고민이 모유수유라는 키워드 하나에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평생의 결정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허허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일로 말이다. 더군다나 모유가 안나오는 것도 아니고 직접 수유를 못하는 것 때문에 이런 고민들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자연스레 출산 직전에 우리를 유일하게 힘들게 했던 이슈인 조산원 논쟁이 떠올랐다. (생각도 하기 싫다;) 본질이 이게 아닌걸 알면서도 서로를 생각해준답시고 질질 끌면서 괴롭게 했던 그 패턴 말이다. 


나는 하돌이에게 어떤 부모가 되기를 원하는가. 또 하돌이가 어떤 아이로 자라나길 기대하고 있는가. 대화 도중 사춘기 시절에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여유있지 못한 상황때문에 부모로서 다 지원해주지 못한것이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게 너무나 듣기 싫었던 기억이 났다. 아버지께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삶을 살아오셨고 경제적 어려움이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고 신앙으로 길러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큰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참 괴로웠었다. 아직 출발선에서 몇걸음 못뗀거나 마찬가지만 나도 하돌이에게 (끝간데 없을 수 밖에 없는) 비교적 괜찮다싶은 생활기반을 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무엇보다 하돌이가 하나님을 아는 아이로 자라나길 원한다. 말씀을 삶의 기반으로 삼고 바른 가치관과 공동체를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나길 기대한다. 아이가 이쁘지 않아도, 키가 좀 작더라도, 공부를 하지 못하거나 성격이 좀 모나도 혹은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건강하지 않더라도 아빠의 단 하나의 바람을 말하자면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하돌이를 향한 나의 마음의 본질이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세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밤중에 2-3시간마다 모유를 먹어야 한다고 해서 이왕 늦은 시간인것 깨워서 먹이고 잠들어야겠다고 결정을 했다. 아이를 무릎에 눕히고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이마와 볼마사지를 하고, 발바닥을 톡톡 치기도 하고, 놀라지 않을정도로 큰 목소리로 불러보기도 하는데...아이가 깨지 않는게 아닌가 ㅋㅋ 누굴 닮아 그리 곱게 자는지. 간밤에 케이블에서 나오는 '콘스탄틴'의 소리에도 깨지 않고 곤히 자는 하돌이의 모습을 보니 쿡쿡 웃음이 나오더라. 아이구 순한 것. 우리의 시도는 기분좋은 실패로 끝났고 아내와 나는 유축기로 젖을 저장한 후 잠이 들었다. 하돌이는 이후로 한두시간은 더 잤다(고 카더라.) 비온뒤에 땅이 굳는다고 지난 밤을 지내며 아내와의 유대감도 깊어지고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진것 같다. 부모는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나보다. 다가올 더욱 큰 고민들과 갈등들이 많다는걸 알지만 어쩌겠는가. 케세라세라, 코람데오, 마라나타!


[마지막은 곤히 잠드신 김하돌양 사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