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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봐야할 것 같은 영화. 오래 기달리기도 했고 인터넷에 넘치는 말들이 더이상 스포가 되기 전에 볼 수 있어 다행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우리나라의 봉준호처럼 믿고 보는 감독의 반열에 오른 후에도 꾸준히 좋은 영화를 만들고 있다. 치밀한 각본-골격이 되는 설정과 풀어나가는 과정, 케릭터 구축까지-과 더불어 블록버스터에 어울리는 스케일과 더불어 인물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좋은 연출 실력까지. 아직까지 그에 대한 믿음을 놓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달까.

인터뷰에서 감독이 어느순간 사라진 위대했던 가족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는데 이 영화를 보고나니 놀란만의 방식으로 가족영화를 만들어 냈구나 싶다. (다만 어린 자녀와는 보지 마시길. 상영시간이 길뿐더러 내용 따라가기도 벅찰듯)
영화의 기본 골격은 우주를 개척하거나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하는 모험이라기 보단 가족영화의 드라마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병충해와 황사로 살기 힘들어진 지구를 구하기 위해 떠난 아버지의 이야기랄까.

크리스토퍼 놀란의 강점 중 하나는 어떤 설정이든 현실성을 부여한다는 것인데 대표적으로 코믹스였던 배트맨 시리즈를 영화로 옮겨오면서 미국 어딘가에 고담시가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었다. 사람의 꿈 속에 들어가 생각을 심는다는 인셉션 또한 마찬가지로 근미래에 혹은 지금 어딘가에 있을 법한 느낌을 준다.
그러기 위해 텀블러(배트맨차라고 해야하나;)는 온갖 방탄기능이 달린 소형 전차가 되었고 인셉션의 갈등은 라이벌 에너지 회사를 붕괴시키기 위한 기업간의 경쟁에서 비롯하게 된다. 인터스텔라 또한 우리에게 현실성을 부여하는데 인류가 더이상 지구에서 살아가기엔 버거워진 모습을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서두에 잘 보여준다.

메멘토나 배트맨 시리즈, 인셉션과 같은 전작들을 보면 놀란 감독은 철학자나 엔지니어와 같은 철저히 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이는데 이 영화는 그만의 색깔이 진하게 배여있는 감성 가득한 영화로 만든 것 같다. ​이공계 공돌이가 만든 감성가족영화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래비티와의 비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주를 기반으로 빼어난 영상미와 뛰어난 연출을 선보였지만 그래비티에서 우주란 재난영화의 공간으로서 소재가 쓰였다면 인터스텔라에서의 우주는 그 자체에 대한 경이와 가능성이 담겨져있다. 그래비티에서의 우주는 완전한 고립, 고요였다면 인터스텔라의 우주는 대안이자 유일한 희망이라는 가능성이니까.

특별히 영화관에서 꼭 봐야하는 영화들이 있는데 인터스텔라는 아이맥스로 봐야한다는 소문이 있는지라 예매하는데 애먹었다. 나에게 단 한번의 기회가 있다면 단연 아이맥스에서 볼 것 같다. 큰 화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란게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놀란의 작품 중 첫번째로 꼽히는 영화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영화 역사에 오래 회자될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이 시대의 현역 일선의 감독이 만든 확실한 결과물 중 감정이 듬뿍 담긴 독특한 작품을 봤다는 것이 결코 나쁜 기억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상암에서 영화를 보는데 멀지도 않은 집에서 잘 놀고 있는 딸이 얼마나 보고싶던지. 영화를 보는 도중에 눈물이 난건 가끔 경험하지만 나오는 깅목에서 울컥 감정이 올라와 훌쩍거린건 처음 경험해보네. 벌써부터 놀란 감독의 차기작을 기다려야 하다니! 그것 참 괴롭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