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읽기

레볼루셔러니 로드(2008)

레볼루셔너리 로드
감독 샘 멘데스 (2008 / 영국,미국)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케이트 윈슬렛
상세보기


연극이 끝난 후 커튼콜에 쏟아지는 관객들의 박수에 들리는 한 목소리. "저 여배우의 연기는 형편없었지." 
분에 차 남편에게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추측할 뿐 정말 연기가 형편없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파경으로 치닫는 그들의 결혼생활도 어디에서 균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관객들은 알 수 없다. 다만 그 끝을 향해 달려가는 광경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 밖에는.

애잔했던 타이타닉의 두 연인이 만나 결혼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어쨋든 술집에서의 짧은 만남은 결혼까지 이어졌고 이제는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있었다. 흐른 시간만큼이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았다면 삶의 의미가 없다'고 호방하게 외치던 청년은 아버지가 다니던 사무기기회사의 판매원이 되어 있었고, 연기수업을 받던 여자는 연극 하나 변변히 올라가지 못하는 무병배우가 되어 있었다.  

빤한 미래를 두고 서로에게 지쳐있는 부부에게 전환점이 찾아온다. 오래전 남편이 파리라는 도시에는 사람이 생기가 넘친다고 말한 것을 아내가 기억해낸 것.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위해 포기한 자신의 삶을 찾길 바랬고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고 남편을 설득한다. 바로 그 날부터 에이프릴은 집을 처분하고 회사를 정리한 후 파리에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갈 꿈에 부풀어지낸다. 프랭크 또한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에 아랑곳 않고 파리로 떠날 준비를 하게 된다.

이 부부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걸까?

남편은 오랜시간 무의미하지만 가족을 위해 자신이 그렇게도 되기 싫었던 아버지처럼 일을 해 집을 사고 안정을 얻었다. 아내의 기분에 전전긍긍하며 좋은 남편 역할을 맞춰주었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의 재능을 찾을 수 있도록 파리에서 사회통념을 거슬러 자신이 직장을 얻으려고 한다. 

상대를 위해 자신이 포기한 것들, 이것이 이 부부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상대방을 부숴버릴듯 날카롭던 관계마저도 '파리'로 상징이 되는 다시 시작할 미래에 대한 풍성한 기대로 급속히 좋아지게 된다. 소풍을 가기 며칠전부터 들떠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의 모습이 스테로이드를 맞은 야구선수와 같이 불안하게 느껴졌는데 현실이 그렇듯 영화는 이들에게 해피엔딩 대신 깨어짐을 선사한다. 좋아진 부부사이로 인해 생긴 임신, 뜻하지 않은 진급과 성공의 길은 '너를 위해'라는 단순한 연산을 복잡다단하게 만들어버린다.

'현실적'이라는 이유로 프랭크가 파리를 먼저 포기해버리자 에이프릴은 더이상 그들에게 기회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녀에게 파리란 자신과 프랭크가 다시 사랑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와 같았던 것 같다. 그녀는 파리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낙태라는 극단적인 방법도 포함시키지만 자녀들을 중요시여기는 프랭크에게 그것은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만들어버린다. 더이상 프랭크에게 사랑을 표현할 방법을 상실해버리자 에이프릴은 둘의 관계가 끝이 났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 부부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걸까?

영화를 보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교제를 하면서 일어났던 갈등의 패턴들과 결혼을 앞두고 선택해야하는 것만큼 포기해야하는 부분들이 있기에 영화를 더욱 맛깔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연인간에 '사랑하기 위해 떠난다'는 것만큼 아이러니한 것이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드러내기 위한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의 수고가 '상대가 원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기에 문제가 되고 그 순간만큼은 상대방이 아니라고 말을 해도 자신이 옳다고 강하게 믿어버리기 때문에 대부분 일이 커지곤 한다.

이들은 상대방에게 소리를 지르고 폭력을 행사하지만 서로 헤어질 생각은 하지 않는다. 더이상 사랑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에이프릴이 프랭크의 접촉은 거부하지만 떠나갈 것을 요구하지 않는 그 미묘한 선이 부부의 반복될 수 밖에 없는 미래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오히려 그것이 그들을 더욱 괴롭게할지라도 말이다. 이것이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사랑의 흔적일까. 

운기형은 이 영화가 참 많이 힘들것이라고 했지만 극단적인 엔딩에서도 난 그렇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것이 옳은 것이든 아니든 마지막까지 그들은 자신의 선택을 고수했고 그 결과를 살아내는 모습을 보는것이 씁쓸한 마음을 감출순 없지만 인간적이라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근래 날 참 힘들게 한 영화는 임상수감독의 하녀였다. 사람에 대한 무례함이 가득했던 영화의 기이한 분위기는 그 절정에 이르러 같은 씁쓸함일지라도 더욱 기분나쁘게 받아들여졌다. 그래도 레볼루셔러니 로드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과연 이 부부가 상대를 위해 포기하는 것이 아닌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을 배웠다면 영화는 다르게 흘러갔을까. 프랭크와 에이프릴이 벗어나고 싶어했던 그 거리, 그 집에는 다시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에게 레볼루셔러니 로드는 새로운 삶의 기회일까, 벗어날 수 없는 덫에 걸리게 된 걸까. 그 해답은 멀지 않은 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