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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층간소음과 변화

며칠전 아내와 쓰레기봉투를 들고 내려가다가 아랫집 아주머님과 따님을 만났다. 평소에도 애 셋 키우는 집으로 불편드려 죄송하다고 하면 본인들은 다 직장에 다녀서 괜찮다고, 낮시간에는 맘껏 다니고 밤에만 조심해달라고 말씀해주시곤 했는데 어째 인사하는 분위기가 심상치않았다.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시진 않으셨지만 자녀분들이 밤에 층간소음이 힘드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우다다 하는 발소리도 나고 쉬어야하는데 어렵다는 말씀을 (아주머님은 부드럽게, 따님은 조금 더 쌔게) 전해주셨다. 전에 이야기하셨듯이 일곱시 이후로만 조심해달라고 당부하셨다.

올게 왔구나, 싶었다. 긴장되는 마음 한편으로는 우리 가족 생활 루틴을 확실히 잡아야하는 변화의 기회가 왔구나 생각을 했다. 덕분에 그날부터 이른 저녁을 먹고 온가족이 (전에 사놨지만 잘신지않았던) 실내화 착용을 하고 여덞시면 무조건 소등하고 애들을 재우고 있다. 전에도 한두번 수면시간을 앞당긴적이 있었지만 어떻게 잠을 재운다해도 새벽에 깨서 못자거나 아침에 너무 일찍 깨서 그것대로 생활이 잡히지 않아 고생이었는데 일주일쯤 된 지금 꽤 안정적으로 수면시간이 잡힌 것 같다. 무엇보다 고무적인건 우리 부부가 잠드는 시간이 앞당겨진건데 할일이 있던없던/혹은 수면장애로 일러야 한두시넘어 잠들곤 했는데 10-11시 사이에 아내가 잠을 자고있다. 아마 나도 학기가 시작되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잠드는 시간이 당겨지지 않을까 싶다. 첫째 키울때만해도 어떻게 수면습관을 들여야 할지 몰라 한시너머까지 아기 잠들때까지 부모가 버티는 식으로 잠들곤 했는데 참 신기하다.

지난 6개월의 기간동안 이런저런 의미들이 있겠지만 생활적인 면에서의 변화가 조금씩 열매를 맺는걸 보는 것 같다. 지난달부터 첫째와 둘째가 수영장에 주3일을 다니고, 첫째는 이틀은 발레를 다니는데 최근 건강식 조절과 더불어 체중에 유의미한 변화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열심히 발을 차도 앞에 나가질 못해 속상해하던게 이젠 음파음파하면서 손짓하는걸 배우는걸 보면 작은 감동이 있다. 첫째와 몇달전부터 집에서 문제집으로 수학을 지도하는데-다행히 내가 학교에서 주로 가르치는 학습 범위가 딱 여기다- 더디지만 요령을 익혀가는걸 볼 수 있었다. 입학할때만해도 가나다도 모르던 애가 어느새 책읽을 시간이 부족해 그만 좀 보라고 잔소리를 해야하다니 한해동안 무슨일이 생긴건가 싶다. 매일 일기쓰기를 하고 나도 깜빡깜빡하는 큐티를 아침마다 등교전에 하고 가다니. 이건 나도 한번도 못해본건데 말이지.

잘은 모르지만 이런 변화 하나하나가 결국 앞으로의 시간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이젠 한달도 남지않은 이 기간이 나름의 유종의 미를 거둔다면 처음 기대했던 임용고시는 오히려 한해 더 장기적으로 바라봐야했고 이런것들이 열매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랫집에도 평안한 밤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