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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음식물쓰레기에 대한 단상

형제하우스 시절, 음식물쓰레기는 검정비닐봉지에 담아 냉동칸에 넣었었다. 감사하게도 부천시는 종량봉투가 따로 없기에 간간히 얼려진 덩어리를 음식물쓰레기통에 버리면 처리할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비위가 약한 아내가 입덧까지 시작하자 논의할 필요도 없이 냉장고 정리나 음식물 쓰레기는 나의 담당이 되었다. 아줌마들과의 수다속에서 집안일을 잘 돕지 않는 아저씨들도 분리수거나 음식물쓰레기을 전담한다는 이야기를 몇번 들은 경험이 있기에 이미 결혼 전부터 생각했었던 일이기도 했다. 음식물쓰레기 특유의 역한 냄새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의 비위도 있고 군데군데 묻어있는 잔해들이 깨끗이 씻겨나가는 즐거움도 맛보고 있는 중이다.

유난히 일찍 잠드는 날이 많았던 한주간이었는데 마침 어젯밤은 자정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총총한 눈상태를 보니 쉬이 잠들지 못할 것 같아서 그동안 미뤄놓았던 집안일들을 손보기로 하였다. 쌓여있는 설거지들을 해결하고 행주도 삶는 등 소소한 일거리들을 처리했는데 하이라이트는 냉장고에 묵혀있던 녀석들을 분류, 추방하는 것이었다.

둘이서 사는 집인데다 집에서 식사를 많이하지 않다보니 처가에서 보내준 음식들이나 만들어서 남은 반찬들이 손도 한번 타보지 못한 것들이 꽤 있었다. 대체로 상한 냄새를 풍기거나 곰팡이가 피어있는 녀석들을 분류한 후 물기를 제거하고 검정비닐봉지에 담자 양이 적지 않았다. 출근길에 버리고 가기엔 뿜어내는 악취가 만만치 않아 미리 버리기로 하고 구석에 있던 처리하지 못한 대나무장판과 함께 욘석들은 이른 새벽에 강제퇴거를 당하고 말았다.

조금만 더 신경쓰고 알아보았다면 이렇게 버려지지는 않았을거란 아쉬움이 들었다. 상을 풍성하게 해주었을 녀석들의 최후가 음식물쓰레기통 행이라는게 만들어주신 분들의 수고와 겹쳐 부끄러운 마음과 죄송한 마음으로 이어졌다. 일상의 훈련인 라이프사이클을 만드는 것의 필요성도 떠오르게 되었다. 냉장고를 가득채웠던 일종의 감당할 수 없었던 풍족함을 이웃과 나눴더라면 어땠을까. 상대의 필요를 채우는 기쁨과 전해지는 손길의 훈훈함이 함께 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을 만족할줄 아는 것, 나의 분수를 알고 모자름을 받아들이는 만큼이나 풍족함을 인정하는 것, 인생의 불확실함에 썩어 버려질 때까지 붙잡고 살아가기보다 이웃과 공동체와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런 삶이 더 값지지 않을까.

우리 부부는 대학시절 함께 지낸 공동체에 빚진 마음으로 함께하고자 인근에 신혼살림을 차리기로 하였다. 많이 부족하지만 우리의 역량을 넘어서 초대할 때도 있었고 되려 그 과정중에 섬김을 받은 기억도 많다. 일년 반 즈음 남은 기간동안 더 지혜롭게, 겸손히 교제하고 함께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나의 것을 지킴으로 얻어지는 부요함보다 나눔으로 얻을 수 있는 풍성함을 더욱 가치있게 여길줄 알기를.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