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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분당 사고 단상

포미닛 공연을 관람하던 20여명의 사람들이 디디고 있던 환풍구가 무너지면서 사고가 일어났다. 20미터정도 되는 깊이라고 한다. 사진으로 봤는데 컴컴한 구멍이 있더라. 얼마 전 해무에서 조선족들이 몸을 숨겼던 창고처럼 보였다. 처음엔 학생들이 많다고 했는데 정작 20-40대 어른들이 많더라. 그곳이 IT 기업들이 많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섬찟했다. 내가 그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면 공연을 보려고 했을거고, 아무렇지 않게 환풍구 위에 서 있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마음이 심연에 다다르게 되었다. 내가 그 곳을 지나가고 있었다면 인기가수가 공연을 한다는데 좋다고 그 자리에 있으면서 페이스북으로 자랑하고 아내에게도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공연을 마친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퇴근길에는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곤 했을텐데. 내가 살아가는 루틴한 삶이라는게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그들의 죽음과 관련된 사연들이 하나 둘 씩 알려진다. 암투병중인 아내와 바람쐬러 나갔다가 변을 당했다던지 등의 가슴아픈 이야기들 말이다. 그러다가 공연관계자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고 머리가 한동안 벙쪘다. 그가 남겼다는 페이스북에는 자녀로 추정되는 2명의 이름과 아내로 추정되는 분에게 미안하고 보고 싶다고 적혀있었다. 공연도중 일어난 사고에 그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수습은 커녕 감당할 수 없을만큼 사태가 확산되고 경찰에 소환되어 진술하는동안 그에게 가해졌던 압박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죽음이 죽음을 부르는 이 상황에 황망함이 말할 수 없다. 나의 또래들이 그 죽음의 당사자들이라는게 더 크게 와닿는 것 같다.


어제 오늘 아내의 오랜 요청에 의해 체질한의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고작 이틀이지만 한의사의 의견에 따르면 나는 아내와 정반대 체질이라고 한다. 모든 육류와 밀가루를 피하고 해물과 잎채소를 먹어야 한다는 말에 충격이 적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부정당하는 느낌이랄까. 우울감 속에 여러가지 생각들이 오가면서 대체 왜 우리는 살아가는지 질문하게 되었다. 체질에 맞게 내가 선호하는 음식을 가려야 하는 이유가 장수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왜 인생의 한두해를 더 살아야 하는지 묻게 되더라. 그간 내가 고민해오던 행복이라는 것의 정의와 더불어. 인생의 목적이라는 종교적 질문과 더불어.


여튼 나는 주말을 보내고 있고. 체질이 확정될 때까진 한의원에서 시키는대로 음식을 가려먹을 것이다. 서늘해진 날씨만큼이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날들을 보내게 된다. 아직 친구들을 보내본 적 없는 이의 철없는 소리같기도 하고.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짊어지고 묻고 대답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길이 얼핏이라도 보이리라 믿기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