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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방학 끝

어제는. 부모님께서 아이들과 한강 물놀이장에 가주시는 동안 대출을 받기 위해 아내와 일산에 갔다. 동네지점에서 해결하고 싶었는데 처음 계약한 곳에 가서 해야한다는 안내를 받았었다. 간만에 간 일산은 내가 청소년기를 보내던 곳과는 다른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교과서에나 볼듯한 베드타운같았다고 할까. 말 그대로 추억의 장소가 되어가는 듯 하다.

대출은 역시나 한번에 되진 않고 개학하면 다시 와야할듯 하다. 결혼하기 위해 처음 은행에 찾아갔을 땐 긴장도 많이 했었는데. 대출권장시대를 맞아 직원분들도 더 친절해진 것 같고 더 복잡해진 조건들에 비해 수월하게 빚을 늘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필요한 업무를 마친 후 시간이 남아 오랜만에 둘이서 영화를 봤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태풍이 지나가고. 단편소설과 같은 소품이지만 여전히 인생과 가족에 대한 작가의 따듯하면서도 세심한 시선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하는 힘을 가졌다. 아버지를 다룬 여러 소설이나 영화들을 봤지만 위대하거나 초인적인 인물이 아닌 초라하고 찌질하지만 아버지인 주인공이 더 공감이 되었다. 좋은 작품을 보면 이내 그렇듯 생활의 의욕이 복돋아져 출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데 방학 말미에 보길 잘했다 싶다.

그제부터 어깨는 다시 뻐근하면서 통증이 시작되어 심해지기 전에 이전에 복용하다 남은 약을 먹었다. 몸이 방학의 끝을 눈치챘나보다. 그간 어질러진 집도 깨끗이 정리하고 개학을 맞이하고 싶은데, 참. 그나마 오늘은 통증정도가 많이 줄어들어 이정도로 끝남 좋겠다는 바램이 생긴다.

오늘은 수련회날인데 가지 못했다. 한참 아내의 입덧이 심해서 옅은 냄새에도 헛구역질하고 암것도 하지 못했는데 원래도 차를 잘 못타는 사람인지라 이동거리가 조금만 멀어도 힘들어해서 도저히 못가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고보면 교회든, IVF든 내가 속한 공동체의 수련회를 빠진건 처음이지 싶다. 주일 예배를 빠져본적은 있는데 수련회는 다시 곱씹 어봐도 처음인듯 하다. 며칠전 지음이가 친구들과 하루종일 있는다고 좋아하는데 못간다고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엉엉 우는걸 보면서 미안한 마음에 둘만이라도 갈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냉장고도 못열고 기저귀도 갈아주지 못하는 아내에게 2박3일간 희언이와 둘이서 보내라고는 차마 못하겠더라.

어쨋든 방학은 거의 끝이 났다. 도대체 잘 쉰건지 뭔지도 모르는 방학이었다. 절반정도는 통풍때문에 너무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멀쩡할 때는 애들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전업주부의 생활패턴으로 살다보니 방학이 끝나있다. 하루정도만 나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겨울방학으로 미뤄야 할 듯.

엇그제 꿈틀 책 읽기 모임에서 '더 로드'를 읽었는데 다시 읽고 나눔하다보니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 뭔지 어렴풋이 알겠더라. 희망이 사라지고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만큼 어그러진 세상에서도 어쨋든 살아라는 메세지가 답이라곤 보이지 않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준듯하다. 살아야지, 뭐 별 수 있나. 태풍이 지나가고의 주인공 료타처럼 어쨋든 아버지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