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읽기

건축학개론 :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건축학개론 (2012)

8.6
감독
이용주
출연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 조정석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한국 | 118 분 | 2012-03-22

 

건축학개론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추억에 관한 이야기일까.

현재에 사는 엄태웅과 한가인은 과거를 살아간 이제훈과 수지이기도 하다.

그들이 보내버린 지난날들이 오늘을 만들었다고 할까.

 

#. 90년대

얼마전 유스케에서 90년대 특집을 방송하는 걸 보면서 우리가 그 시절을 '좋았던 날들'로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경제적으로도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대중문화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고 있던 날들.

내가 X세대로 살아보지 못한게 뭇내 아쉬울 정도로 지나쳐버린 시간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거리의 비디오가게, 친구가 입고 있는 옷, 이제는 볼 수 없는 버스, 그리고 음악들.

마냥 좋았다는 강요가 불편했던 써니보다 은은하게 그 시절의 공기를 느끼고 음미할 수 있게 되었던 영화가 좋았다.

 

#.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 좀 더 긴 호흡으로 드라마로 만들면 어떨지 생각을 해 보았다.

매회마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할 수 없겠지만 각자의 감정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고

주변 케릭터들의 이야기들도 넣고

하루에 한 강의를 풀어내는 식으로 드라마를 만드는거지. 개강부터 종강까지.

참 좋을 것 같은데.

 

#. 배우

적절한 캐스팅. 아무래도 현재의 커플보다 이제훈-수지에게 집중이 되는데 참 괜찮더라.

수지는 이름만 알았는데 아이돌같지 않은 외모;라 나쁘지 않은 연기를 보여주고 영화를 이끌어간건 이제훈의 연기였다.

한가인의 연기는 여러 생각이 드는데 좋았던 순간들이 있었고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역을 받았는데

아쉬운 장면이 하필이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인지라 영화의 한껏 몰입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게 된달까.

그리고 친구분, 좋았어요. 대사부터 다 :)

 

#. 그래서 사랑 영화가 맞는가?

우리가 유일하게 가질 수 없는 것. 바로 지나가버린 시간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을 했다.

연애를 시작할 때의 설레임이나 헤어짐의 아픔들. 첫 출근의 긴장감이나 열심히 하고자 하는 다짐들.

영화속 승민과 같이 그 당시에도 찌질하고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 없이 삶도 퍽퍽했겠지만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임을 알기에 더 애틋해지는 추억들.

 

첫사랑이라는게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찌질하고 별 볼일 없지만 순수하다고 기억하는 그 감정이 지나쳐버린 좋았던 날들을 떠올리는 기제와 다를 바가 없더라.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는 추억을 대함에 있어서도 첫사랑이라는 감정도 치우침없이 담담히 담아낸 것이 좋았다.

마냥 멜로라기엔 배우들의 감정의 화학작용도 적고 추억영화라기엔 그 시대를 깊이 파고들지도 않지만

덤덤함속에 나를 투영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서 좋았달까.

 

#. 기억의 습작

영화의 메인테마 곡인 기억의 습작.

처음에는 90년대를 회상하는 도구로만 쓰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감독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얼마나 많이 그 노래를 들었을지, 혹 이 노래에서 모티브를 따왔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을 지나온 승민의 고백과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찌질함들 속에 숨겨졌던 그의 마음이 노래와 참 닮아있었다고 생각한다.

기억의 습작이라는 곡 자체가 멜로와 어올리는 곡도 아니고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 짙은 노래인지라

사랑과 추억 사이에 자리잡은 영화와 잘 어올리는 것 같더라.

 

 

참으로 간만에 좋은 영화를 보았다.

나에게 이렇게 추억할 수 있는 첫 사랑이 없다는게 아쉽기도 했고 (더 깊이 공감했을텐데)

감독이 불신지옥 감독이던데;; 다음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내놓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