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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a flow

층간소음과 변화 며칠전 아내와 쓰레기봉투를 들고 내려가다가 아랫집 아주머님과 따님을 만났다. 평소에도 애 셋 키우는 집으로 불편드려 죄송하다고 하면 본인들은 다 직장에 다녀서 괜찮다고, 낮시간에는 맘껏 다니고 밤에만 조심해달라고 말씀해주시곤 했는데 어째 인사하는 분위기가 심상치않았다.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시진 않으셨지만 자녀분들이 밤에 층간소음이 힘드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우다다 하는 발소리도 나고 쉬어야하는데 어렵다는 말씀을 (아주머님은 부드럽게, 따님은 조금 더 쌔게) 전해주셨다. 전에 이야기하셨듯이 일곱시 이후로만 조심해달라고 당부하셨다. 올게 왔구나, 싶었다. 긴장되는 마음 한편으로는 우리 가족 생활 루틴을 확실히 잡아야하는 변화의 기회가 왔구나 생각을 했다. 덕분에 그날부터 이른 저녁을 먹고 온가족이 (전에 .. 더보기
화상소녀 - 사토미 유 요즘 이래저래 새로운 만화를 볼까 찾곤 하는데 막상 SF장르에는 눈이 가는게 잘 없고 스릴러쪽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사토미 유는 혈해의 노아로 알게 된 작가이다. 나름 분위기가 있어 어느정도까지는 힘있게 빠져들게 한다. 이 작품은 혈해의 노아보다는 쉽게 읽히지만 인물의 감정을 따라잡는게 좀 부담이 있다. 좋아하는 작가인 오시미 슈조 선생 느낌이 물씬 나서 더 좋았을지도. 알게모르게 피의 꽃 생각이 종종 났다. 다만, 이 작품이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힘이 떨어지는데다 결말에서 묘하게 날림으로 풀어버리는 바람에 이도저도 아닌 작품이 되어버렸다. 떡밥을 다 회수할 필요는 없지만 좀 더 풀어낼 이야기들도 있었는데 그냥 끝을 내버린. 과연 다음 작품에서는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아직은 회의적이다. 하.. 더보기
부디 평안히 쉬기를 그냥 어느때나 있을법한 새벽이었다. 다섯시즈음이었나 잠에서 깨 습관대로 핸드폰을 뒤적이다 코비 브라이언트의 사망소식에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난 nba를 잘 알지 못한다. 볼 수 있는 경로도 없었을 뿐 아니라 기본적인 룰조차 조금만 딥하게 들어가도 잘 모른다. 어릴때 문방구에서 파는 nba카드를 샀던게 유일한 접점이랄까. 그래도 코비의 이름은 잘 알고 있었다. 가장 조던에 근접한 사나이. 가끔 위키로 찾아보면 까이는 지점이 없진 않으나 그의 실력과 영향력에 있어서는 부인할 수 없는 레전드라는건 쉽게 알 수 있었다. 헬리콥터 사고라니. 이 황망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의 옆에는 딸이 동승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아. 비통하다. 누구에게나 평등하지만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SNS에 추모.. 더보기
그냥 보통의 토요일 이야기 첫째가 문제집 책거리로 동네 가까운 키즈카페인 헬로방방에 갔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던 키카는 수색이마트 1층에 있던 곳이 구조나 비용이 좋았는데 없어진 이후로(ㅂㄷㅂㄷ) 딱히 자주 이용하진 않았다. ⠀ 명지전문대 근처, 아니 충암고 옆에 있는 헬로방방은 아주 큰 공간은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공간들이 많아 두시간은 곰방 지나가는 곳이다. 진취적인 자세 멋지다 ⠀ 첫째는 오늘 키넥트를 열심히 했다. (우리집에도 있던건데 고장나는 바람에ㅠ) 나름 볼링이랑 이것저것 재미있었나보다. 언젠가 아이들이랑 실전볼링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몇살부터 가능할지 모르겠다. 여기 건물에 볼링장도 있는데 ㅎㅎㅎ ⠀ 둘째야 여기저기 신나서 뛰어다니는데 모르는 애들한테도 엄청 들이대고 기분 나빠하다가도 해맑게 같이 놀기.. 더보기
집의 시간들(2018) 집의 시간들(2018) 철거를 앞둔 서울에 있는 한 오래된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모은 다큐멘터리이다. 각자의 삶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어느덧 나도 이들과 같은 시간을 살아낸듯한 느낌이 든다. 워낙 오래된 아파트여서 거기서 태어난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어 자녀와 함께 사는 이야기도 있고, 어린시절 떠날때의 아쉬운 마음을 잊지못해 성인이 되어 부러 이곳으로 혼자 이사를 온 사람도 있었다. 녹물이 나오고 자주 정전이 되는가하면 온수가 나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마음대로 아기를 씻기지도 못하는 낡은집이지만 창너머로 가득한 나무들과 새소리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이 세상에 최후의 아파트이기도 했다. 부동산이라는 재물적인 가치보다 내가 거주하는 곳, 아니 뿌리내린 곳이라는 정체성이 공간에 깃들.. 더보기
잘하고있다. 매주 월수금마다 한시간씩 아이들을 체육관에 데려다주고 수영복을 갈아입힌 후 건물 바깥쪽 창너머로 수영장을 볼 수 있는 대기방에서 아이들 수업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아직 많은 회차를 한건 아니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이나 조금씩 발전하는 실력을 보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반면 이 공간을 함께 쓰는 학부모-물론 나를 빼고 다 어머님들이다-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면 어질어질해지곤 한다. 어쩜 매번 아이들의 공부 이야기 일변도인지. 할 얘기가 그것뿐이라 그런건지, 그것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서인지 모르겠다. 가끔은 드라마 이야기도 좀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좀 하면 좋을텐데 말이다. 조금만 그 이야기를 듣자면 마음에 조바심이 슬며시 생겨나곤 한다. 우리가 지금 큰 애한테 하는게 잘못되진 않았나 맘속에 부.. 더보기
삼남매와 함께 북한산 글램핑장을 가다 # 개요 일시 : 2020.01.12(일)-13(월)장소 : 북한산 글램핑장(서울 은평구 북한산로 232-1, 010-7183-0734)비용 : 예약 149,000원(평일 기준, 어린이 2명 추가, 실내용 난방기, 개별 바람막이), 바비큐 2만, 캠프파이어 2만 #. 캠핑장으로 출발 (1) ⠀ 우리 가족은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니다. 차가 없기도 하지만 매 방학마다 충북 단양에 있는 처가로 내려가 며칠씩 묵고 오면 그닥 여행에 대한 마음도 가라앉곤 했다. 그러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아마) 처음으로 처가에 내려가지 않기로 하며 어디라도 좀 다녀올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 일을 하지 않다보니 내 시간은 많은데 비해 아이들이 수영과 발레 등 정기적인 수업들이 있고 아내도 공동육아.. 더보기
셋이서 문학관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문화적 체험들이 주는 삶의 풍요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 오늘 북한산 캠핑장에 와서 짐을 풀고 아이들과 산책로를 따라 걷다 한옥마을이 있어 가보았다. 지도 어플에 셋이서 문학관이라는 장소가 있길래 아이들과 들렀다가 큰 감흥을 얻고 돌아왔다. 처음 내 눈에 들어온건 중광스님의 글귀였다. 넘치는 힘과 해학이 눈길을 끌었다. 감탄을 하며 들어갔다가 정작 내 마음을 깊게 흔든건 천상병 시인의 글이었다. 귀천. 문학선생님이신 고등학교 담임샘이 지각하면 벌대신 시를 한편 암송하면 집으로 보내주셨는데 첫 작품(!)이 이 작품이었다. 나에게 천상병시인은 그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작가소개에서 동백림사건으로 6개월간 고문을 받으셨음에도 순수한 작품세계를 이어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하.. 더보기
첫째가 밴드를 잃어버렸다. 오늘 수영을 마치고 둘째를 씻기고 옷 갈아입힌 후 첫째를 기다리는데 표정이 여간 어둡지 않은가. 수영시간에 앞으로 나가질 못해서 스트레스 받던것도 오늘 잘했는데 뭔일이지 싶었다. 롱패딩 안으로는 깜박하고 입지 않은 윗도리 대신 내복이 보이고 있었다. “아빠, 팔찌를 잃어버렸어요” 오마이갓. 여기서 팔찌란 가민의 비보핏 주니어2를 말한다. 작년 여름 이후 체중은 급격히 증가했는데 운동량이 많이 부족해 나름 거금을 들여 산 제품이었다. 무엇보다 아쉬운건 첫째가 지난 몇달간 활용을 잘했던지라 어떻게 대체할 수가 없다는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플 내에 부모-자녀 계정 간 보상 시스템이 연결되어 있는데 매우 잘 사용중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영을 마칠땐 있었는데 옷을 갈아입으려 잠깐 바닥에 두었더니 사라졌.. 더보기
둘째 이야기 둘째는 참 다정한 아이다. 막내가 제멋대로 패악질을 저질러도 속상해서 울면 울었지 힘을 써서 자기 마음대로 하는걸 본적이 없다. 동생과 놀 때도 얼마나 다정다감하게 말을 거는지 모르겠다. 한편 둘째는 굉장히 정서적이고 마음이 단단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첫째가 안정감있고 독립적인데 비해 둘째는 자신의 감정이 중요하고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몹시 속상해한다. 오늘은 첫째가 마을공동체 꿈틀에서 동극 공연 리허설이 있어서 수영에 함께가지 못했다. 언제나 그랬듯 옷을 갈아입히고 샤워실을 지나 수영장에 들어가라고 기분좋게 인사하고 헤어졌는데 5분이 지나도 수영장 창문 안으로 둘째가 보이지 않는 것 아닌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하면서 하다가 도저히 아닌 것 같아 가보니 탈의실에는 애가 안보이고 샤워실을 들여다.. 더보기